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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자료실

칠레에서 양심적 임신중절수술 거부를 규정한 법안의 위헌 여부

작성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작성일
2020-06-10 15:13
조회
1000
해외법조

칠레에서 양심적 임신중절수술 거부를 규정한 법안의 위헌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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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17년 8월 28일 칠레 헌법재판소는 추상적 규범통제 절차를 통하여 세 가지 경우에 자발적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법안에 대해 합헌으로 선고하였다{Rol N° 3729(3751)-17-CPT}. 심판대상조문 중의 하나인 보건법안 제119조에 따르면, 세 가지 경우란 1) 여성이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어 임신중절이 행해져야 여성 생명의 위태로움을 막을 수 있는 경우, 2) 배아 또는 태아가 어떤 경우든 치명적인 성격의 유전적인 또는 선천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어 자궁 밖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 3) 강간에 의한 결과로 임신되어 임신 12주가 경과하지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다만 강간 피해자가 14세 미만의 소녀의 경우, 임신 14주까지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칠레의 경우, 군사정권 때부터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정책을 25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고, 상기 법안 이전에 1989년 보건법 제119조는 '임신중절의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어떤 행위도 실행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연유산 수술에 대해서만 형법상 낙태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 사건 법안의 내용은 이전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어서 칠레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칠레 헌법재판소는 세 가지 경우에 자발적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법정의견은 태아의 보호가 여성의 권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서 행해질 수 없고, 헌법은 국가가 모(母)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강간의 결과로 아이를 가지도록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태아만이 헌법에 의해 유일하게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며, 입법자가 태아가 태어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넘을 경우 여성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또한, 이 사건에서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양심적 거부를 규정한 보건법안 제119조의3의 위헌 여부가 문제되었는데, 칠레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은 양심적 거부를 개인만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단체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위 조항에 대해서만 일부위헌으로 선고하였다. 이 글에서는 양심적 거부에 관한 쟁점을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사건개요 


2015년 당시 칠레 대통령인 미첼 바첼렛(Michelle Bachelet)은 '세 가지 경우에 자발적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법안(regula la despenalizacion de la interrupcion voluntaria del embarazo en tres causales)'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이 법안은 보건법, 형법 등의 규정을 일부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내용이다. 법안은 2016년 3월 17일 하원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었고, 상원에서 내용을 재검토하여 2017년 8월 1일 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칠레 상원의 4분의 1 이상의 의원들은 이 법안의 위헌 여부(추상적 규범통제)를 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다. 이 사건에서 청구인은 법안의 내용이 입법자가 법치국가에 기반을 둔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 제19조 제1항 제2문 '법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의 명령을 위반한 점, 헌법 제1조 제2항의 법 앞의 평등에 위배되어 자의적인 차별을 초래한다는 점 그리고 헌법 제19조 제6항의 양심의 자유, 헌법 제19조 제16항의 직업의 자유에 반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3. 결정요지

심판대상조문인 보건법안 제119조의3은 '제119조에 따른 사유로 임신중절을 해야 하는 외과의사가 의료기관의 책임자에게 자신의 양심적 거부를 서면으로 사전에 표명하였다면 임신중절수술을 행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권리는 수술 중에 외과병동 내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기타 전문가인 직원도 가진다. 이 경우, 해당 기관은 환자에 대해 이의제기하지 않는 다른 전문의를 즉시 재배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료기관에서 양심적 거부를 표명하지 않은 의사가 없는 경우에 이러한 거부를 표명하지 않은 자가 해당 절차를 수행할 수 있도록 즉시 이송한다. 보건부는 양심적 거부의 집행을 위한 필요한 기준을 마련한다. 이러한 기준은 전항에 따라 임신중절을 요청하는 환자에 대한 진찰을 보장해야 한다. 양심적 거부는 개인적 성격을 지니며, 어떠한 경우에도 기관에 의해 제기될 수 없다. 양심적 거부를 표명한 전문의가 임신중절을 해야 하는 경우, 전문의는 이를 요청하는 여성이 이송되어야 하는 것을 즉시 의료기관의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119조 1)의 사유를 주장하면서 여성이 즉각적이고 긴급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수술을 할 수 있는 다른 외과의사가 없는 때에 양심적 거부를 표명한 자는 임신중절수술에서 면제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제119조 3)의 사유에 따른 기간의 경과가 촉박한 경우에도 면제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에 따르면, 법안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양심적 거부(objecion de conciencia)는 (개별적 또는 다른 이들과 결합하여)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전문적 또는 기타의 관련성을 이유로 특정 유형의 행위(임신중절)를 행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써 이는 인간의 존엄성의 보호로 이해되어야 한다. 헌법 제1장 '위헌성의 기준' 중에서 헌법 제1조는 명시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으로 항상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의 품격으로서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 사람의 소망, 욕구 또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밝히는 것을 단념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여 어떤 법도 사람을 수단으로 규정할 수 없다.

양심적 거부는 사람의 가장 내밀한 신념과 충돌하는 관행이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고, 헌법 제19조 제6항 첫 번째 단락에서 모든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에 있어 정치적, 사회적, 철학적 또는 종교적 분야든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에 자유롭게 사고할 권리, 간섭 없이 각자 자신의 판단을 형성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설시하였다.

한편, 이 법안의 본질과 특성을 감안할 때, 양심적 거부를 전문가인 개인에 대해서만 한정한다고 볼 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의무적으로 행해야 하는 절차에 반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헌법 제1조 세 번째 단락에서 인정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중간단체(grupos intermedios)의 헌법적 자율성에 기초하여 법인이나 민간단체도 양심적 거부를 할 수 있다. 헌법 제19조 제15항에서 모든 사람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듯이 적법한 이의제기는 자유로운 생각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도 확대된다. 또한 헌법 제19조 제6항에 따라 종교단체, 종교적 이념을 바탕에 두고 있는 법인 또는 기관이 의료보건을 담당하는 경우도 해당될 수 있다. 그리고 헌법 제19조 제11항의 교육의 자유와 관련하여 이념이나 어떤 기능을 가진 교육기관도 양심적 거부를 행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보건법안 제119조의3에서 1) 동조항 첫 번째 단락에서 '수술 중에 외과병동 내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기타 전문가인 직원' 중에서 '전문가(profesional)'라는 표현, 2) 동조항 첫 번째 단락에서 '양심적 거부는 개인적 성격을 지니며, 어떠한 경우에도 기관에 의해 제기될 수 없다' 중에서 금지문인 '어떠한 경우에도(en ningun caso)'라는 표현, 3) 동조항 마지막 부분인 '마찬가지로 제119조 3)의 사유에 따른 기간의 경과가 촉박한 경우에도 면제될 수 없다'는 문장을 위헌으로 선언하고 이를 삭제함이 타당하다.

칠레 헌법재판소는 주문을 통해 보건법안 제119조의3에서 위의 표현들을 삭제한 새로운 규정의 내용을 제시하였다.

4. 반대의견

양심적 임신중절 거부 쟁점에 관하여 10인의 재판관 중 2인은 반대의견(합헌)을 제시하였다. 반대의견에 따르면, 양심적 거부의 구체적인 행사는 보건 분야에서의 입법형성의 영역에 속하고 헌법재판소가 법 적용을 배제할 권한이 없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헌법의 관념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오히려 구체적인 사건에서 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반대의견은 양심적 임신중절수술 거부를 할 수 있는 자를 임신중절수술 전후로 (준비 또는 정리) 관계되는 자나 자연인이 아닌 기관에 대해서까지 객관적으로 확대할 수 없다고 설시하였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임신중절수술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임윤정 책임연구원(헌법재판연구원 비교헌법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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