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NGSAN BIOETHICS RESEARCH INSTITUTE

연구소 언론보도

크리스천 의사가 바라본 코로나19와 예배

작성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작성일
2020-11-18 17:45
조회
81


크리스천 의사가 바라본 코로나19와 예배
  •  이명진    승인 2020.11.17 07:09



사회시민단체 입장에서의 예배

이명진 소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이비인후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인천 회복의교회 장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서울시 의사회 윤리위원)이명진 소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이비인후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인천 회복의교회 장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서울시 의사회 윤리위원)

※ 이 글은 이명진 장로가 11월 17일 "코로나 시대의 참된예배와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한국교회언론회 세미나를 위한 발제문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현장예배를 제한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강제로 금지당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 예배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해 객관적인 보건 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 정부의 예배제한 행정조치의 부당성과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예배가 성도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리해 보았다.

예배는 성도에게 있어 산소와 같다.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영혼은 메말라 죽게 된다. 희생이 없이 편리함만 남은 예배는 따뜻한 냄비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처지가 되게 한다. 예배는 은혜에 보답하는 자리 일 뿐 아니라 공급받는 자리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자녀들이 깨어진 마음으로 드리는 진솔한 회개와 감사의 고백과 찬양을 받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받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영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축복의 시간이다. 예배의 주인은 목사도 성도도 아니다. 오직 주님만이 예배의 대상이시다. 성도들은 예배의 드리는 예배자일 뿐이다.

일찍이 A.W 토져 목사는 경건이 무너져 변질되는 예배를 향해 <예배인가 쇼인가?> 라며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예배는 보고 들으며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드리고 참여하는 자리이다. 경건이 무너진 예배, 사모함이 없는 예배, 음악과 조명과 감상적인 음악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예배, 회개가 없는 예배, 감사의 고백이 없는 예배, 말씀이 무너진 예배, 편리함만 있는 예배,.. 모두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가증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1. 코로나 19에 대한 이해와 교회가 입은 피해

1) 심리학에서 수학을 거쳐 의학단계로

최근 20년 동안 팬데믹의 공포에 빠트린 전염병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와 신종 독감을 거쳐 2015년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를 겪으면서 전염병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된 COVID19가 인접국가인 우리나라에 2020년 1월 20일 처음 확진된 후 10개월이 지났다. 전염병은 심리학의 단계에서 시작해서 수학의 단계를 거쳐 의학의 단계에서 극복된다고 한다. 초기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없고 사람이 죽어 나갈 때 심리적으로 극심한 공포를 겪는다. 모든 생활이 정지되고 제한되는 락다운(Lockdown)이 시행된다. 심리학의 단계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에 대한 전염경로와 감염자에 대한 역학을 파악하며 심리학에서 수학의 단계로 넘어간다. 수학의 단계는 병에 대해 알게 된 의학 지식과 축적된 경험, 통계적 수치를 바탕으로 감염예방의 기준을 만들고 이를 활용하여 제한 된 생활을 회복해 간다. 마지막 의학의 단계는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되거나, 일명 집단면역으로 불리는 허드 면역(herd immunity)이 도달한 때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90%의 효과를 보이는 백신이 개발되어 의학의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마스크의 효과와 끝까지 생명을 놓지 않는 의료진들의 높은 소명의식과 뛰어난 의학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대응해 왔다. 문제는 코로나19 대응방법을 지금처럼 계속 끌고 가면 안 된다는 점이다. 경제와 교육과 일상생활이 붕괴되고 있다. 교회예배를 제한하는 피해를 입고 있다. 모든 경제가 얼어붙고 상인들이 문을 닫고 회사들이 줄줄이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학생들의 학업격차를 더 크게 벌려놓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멀리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국민을 우울과 고독감에 깊이 빠지게 하고 있다. 9월 조사에서 우울위험군은 22.1%로, 3월 조사 17.5%, 5월 조사 18.6%보다 높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11월 초순까지 사망한 수보다 자살로 인한 수가 훨씬 많다. 의료현장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알만한 식자층은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감염병 대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

광우병 파동 때도 그랬듯이 정치가 의학을 무시할 때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의학적 지식에 기초한 예방과 방역이 아니라 공포분위기를 이용한 위험한 방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포 분위기 조성과 정치적 개입은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여 쳐다만 보거나 근처만 지나가도 감염이 되어 죽는 것으로 착각하는 착시현상에 빠지게 하고 있다. 내가 생활하는 집단의 사람들은 무균상태이고 타인이 활동하는 영역에는 바이러스 균이 품어져 나오고 있다는 근거 없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과도한 공포심은 군중들에게 분노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중세시대에 많은 사람이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희생을 당했다. 그 당시 페스트로 죽은 사람과 함께 군중의 분노로 맞아 죽은 사람도 많았다. 전형적인 심리학 단계의 현상이다. 이런 무지한 일들이 현 시대에서도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심리학의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난 10개월간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분석해 볼 때 이미 수학의 단계에 진입해 있다. 최근 감염병 전문가들의 분석과 의견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의 분석과 의견을 근거로 몇 가지 대응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2) 수학적 통계에 따른 맞춤형 대응방법

지난 10개월간 쌓인 코로나의 특성과 수학적 통계에 따른 맞춤형 대응방법으로 수정해야 한다. 2020년 11월 11일 현재 우리나라는 총 27,799명이 확진되었고 487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은 1.75%( 치명률=사망자수/확진자수 x100 )로 7월 말 2.11%에서 1.7%대로 떨어졌다. 확진된 사람의 치료률은 98.25%을 보이고 있다. 확진자수는 20대(20~29세)가 5,357명으로 가장 많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반면 80세 이상의 확진자는 1,212명이지만 사망자가 246명에 달해 20.3%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 전체사망자의 50.31%다. 70대는 157명이 사망하여 전체 사망자의 32.24%를 차지하고 있다. 치명률은 70대가 7.01%, 60대 1.27%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50대 이하에서는 확진자수는 19,950명으로 전체 확진자의 71.77%를 차지하지만 사망자수는 28명이 그치고 있으며, 치명률이 더 급격히 떨어져 50대 0.44%, 40대 0.11%, 30대 0.06%이고 29세 이하에서는 사망자가 전무하다. 이런 양상은 세계적으로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통계는 확진자만을 가지고 분석한 통계 ( 확진자 치사율 Case fatality rate )이기에 실제 무증상감염자와 검사를 하지 않는 사람을 포함( 감염자 치사율 Infection fatality rate )하면 치사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확진자 연령별 현황 (2020.11.11.기준, 질병관리청 보도자료)
연령 구분 확진자(%) 사망자(%) 치명률(%)
80세 이상 1,212(4.36) 246(50.31) 20.3
70-79 2,236(8.04) 157(32.24) 7.01
60-69 4,401(15.83) 56(11.50) 1.27
50-59 5,070(18.24) 22(4.61) 0.43
40-49 3,760(13.53) 4(0.84) 0.11
30-39 3,496(12.58) 2(0.42) 0.06
20-29 5,357(19.27) 0(0.00) -
10-19 1,532(5.51) 0(0.00) -
0-9 735(2.64) 0(0.00) -
과도한 공포분위기 조성은 국민화합을 저해하고 낙인찍기로 인해 이웃 간에 깊은 상처만 남기고 있다. 심리학에 근거한 초보적 대응방법에서 벗어나 수학적 통계에 근거하여 중증환자 발생과 치료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2020년 11월 11일 현재 위중환자는 49명이다. 이들을 담당할 감염병 전담병원은 871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무증상감염자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회복되고 있고, 50대 이하에서는 가벼운 감기나 심한 경우 독감증상을 호소하는 정도에서 회복되고 있다. 확진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증환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나이에 맞춘 맞춤형 대응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매년 적용하고 있는 독감에 준하는 대처방법을 적용했으면 한다. 20대 이하에서 사망자가 없고 중증의 확진자가 거의 없기에 학교등교를 독감유행 기준에 준해서 재개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3) 교회 예배를 제한하는 행정조치의 부당성

교회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행정명령의 객관적 근거와 공평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행정명령의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0년 1월 20일 첫 환자 발생이후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 10개월간의 실생활속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소위 3밀( 밀폐, 밀집, 밀접 )환경은 마스크쓰기와 손 씻기, 잦은 환기로 극복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2미터 거리두기는 기침이나 재채기 등으로 입이나 코에서 오염된 비말이 도달하는 거리를 말한다. 직장과 관공서 등에서 다닥다닥 붙은 거리를 두고도 코로나 확진자가 많지 않은 것은 2미터 거리두기가 아닌 마스크의 효과였다. 실내에서는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정도면 감염예방효과가 충분하다는 것을 지난 10개월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마스크 착용은 생명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보호 장구가 되었다.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맥주집과 카페, 식당, 마트 등에 수많은 시민이 출입을 하고 있는데, 확진자 발생은 많지 않았다. 5월초 확진자의 증가와 8월 중순의 확진자 증가는 정부가 시행한 공휴일 지정에 의해 유흥지 방문과 활동증가에 따른 다중접촉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관공서와 직장에서 8시간 마스크를 쓰고 근무할 때, 교회는 1주일 한 두 번 모여 1시간 남짓 예배를 드린다. 지하철과 대중교통은 전혀 통제하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어느 경우가 감염될 시간과 기회가 더 큰지 쉽게 알 수 있다. 예배를 금지하는지 객관적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인들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무균시설 속에 사는지 사회적 거리두기에 전혀 솔선수범을 보이지 않았다.

둘째, 행정명령의 공평성이다. 모든 법은 사회적 위치나 종교, 학력, 정파를 초월하여 공정하고 같은 적용을 해야 한다. 마스크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의 경우, 모든 시설에 6피트 규정을 적용하여 마트입장도 인원을 제한하여 한 사람이 나오면 다른 한 사람이 입장을 하게 된다. 모이는 인원도 모든 단체와 행사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기독교에만 콕 찍어서 적용하는 부당한 적용은 상상 할 수 없다. 동일한 안전수칙을 모든 단체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국민의 평등권을 훼손하는 부당한 행정명령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법 행위다.

근거가 부족한 방역지침이나 공평성이 결여된 행정명령 남발을 중단해야 한다. 심리학 단계에서나 통할 행태에서 벗어나 수학의 단계에 걸맞은 행정을 펼쳐야 한다. 질병예방 방법도 과학적 근거와 정당성을 가지고 인권침해가 되지 않도록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공정성과 근거가 부족한 과잉경고 방송과 문자발송, 모임금지 기준은 변경되어야 한다. 과도한 문자발송도 자제했으면 한다. 하루에도 수 십 통씩 받는 의미 없는 문자공해에 국민들 모두가 염증을 느끼고 있다. 마음이 약한 노인들은 반복되는 관리실의 경고 방송에 아파트 문밖에만 나가도 병에 걸려 죽는 줄 알고 벌벌 떨게 하고 있다.

질병예방을 빌미로 정부가 함부로 개인정보를 다루고 있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분명히 짚어야 할 부분이다. 근거와 정당성이 결여된 과도한 행정명령과 정치적 발언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심리학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만 줄 뿐이다. 모든 통계상의 현상을 볼 때 우리나라는 이미 수학적 단계에 있지만, 행정은 국민을 심리학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 속히 심리학의 단계에서 벗어나 수학의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숨을 쉬고 교육이 이루어지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감정적 이분법 논리가 아닌 통계와 과학에 근거한 접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진지하고 용기 있는 의견이 개진되고 정책에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교회와 교단은 정부에게 근거와 공평성 결여된 예배제한 조치에 대해 엄중한 지적과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2. COVID19가 교회에 끼친 영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1)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봐야
일부 크리스천 지도자는 코로나19(COVID 19)의 원인이 문명의 발달만 추구한 교만한 인간들이 만든 인재(人災)라고 분석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바른 인식은 아니다. 크리스천은 천성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일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보고 분별해야 한다. 영적 분별력과는 거리가 먼 분석이다. 인간 중심의 사고와 철학에 매몰된 증상이다. 성경적 세계관이 바로 서있지 못 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적 세계관은 주님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변질되어 버린다. 영적 분별력을 잃게 된다.

2)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 찾으신다.

크리스천들은 코로나19(COVID 19)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계획과 주권 아래 진행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19(COVID 19)는 주님의 계획과 주권아래 진행되고 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코로나19(COVID 19)는 세상 끝 날이 임박했다는 말세의 징조이고 경고다. 하나님이 핏 값 주고 사신 자녀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순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주님의 뜻을 읽어야 한다. 셋째, 성도들을 연단하는 과정이다. 주께서 심판 하실 때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을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는 과정이다. 코로나19(COVID 19)라는 키질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신다. 진짜와 가짜 신앙인을 구별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한 번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내 생의 마지막 예배처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기도와 찬양을 기다리신다. 인간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며 간절히 찾는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구별된 무리인 성도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 주일을 성수하며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3. 교회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가?

코로나19(COVID 19)가 세상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학교가 수 개월간 현장수업을 못 하고 인터넷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모든 생활이 비대면 문화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교회 역시 비대면 문화에 휩쓸려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확산에 현장예배(공예배)를 인터넷 예배로 돌리고 영상으로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자의 자세는 어떤 것인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1) 인터넷 예배든 현장예배든 다 필요하다
많은 교회가 공예배를 드리지 않고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인터넷 예배 역시 하나님이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주신 은혜임이 틀림없다. 인터넷 예배는 거동을 할 수 없어 예배당에 오지 못하거나, 전염병이 의심되어 남에게 감염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북한과 같이 예배당에 모일 수 없는 지하교회 교인들을 위해 꼭 필요한 예배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단, 한정된 사람에게 해당되는 예배다. 또한 무슬림 지역의 교회(이슬람권 국가)나 마스크가 공급이 안 되어 사회 모든 시설을 중단시킨 나라(북미와 유럽국가들)의 경우 인터넷 예배를 드릴 수 밖 에 없다. 그와 달리 공예배(현장예배)는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모든 지혜와 노력을 다해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것이 유익하다.

2) 햇볕에 드러나 버린 가짜 신앙인들

코로나19(COVID 19)는 전 세계 교회에 공예배를 마비시켰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왜 어려워진 것 일까? 욥을 시험하신 하나님이 비슷한 시험을 우리에게 하고 계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간악한 마귀가 이때를 틈을 타 성도의 경건을 무너뜨리고, 연약한 성도들의 믿음을 훔쳐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0개월의 시간동안 우리가 평소 예배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실은 코로나19(COVID 19)의 실체는 신학과 신앙의 문제다. 평소 보이지 않던 먼지는 햇빛이 비춰질 때 훤히 드러난다. 예배가 위협받는 극한 상황을 통해 햇빛에 비친 먼지처럼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무늬만 크리스천인지 드러나는 시간이 되고 있다.

특히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목사와 장로들이 어떤 신앙관과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리트머스 시험지를 대어 보는 시험대였다. 감독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공예배를 드리지 못 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성도들의 경건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모든 인터넷 예배는 접속자의 수를 알 수 있다. 예배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접촉자수의 변동을 보면 비대면 예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나쁜 짐승들이 양떼를 해치려고 다가올 때 선한 목자는 목숨을 걸고 양들을 지킨다. 감독자(목사, 장로)들은 목자의 사명을 맡은 청지기들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신앙공동체의 신앙과 경건을 악한 사탄의 공격에서 지켜내야 한다. 이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비난을 피하려고 비겁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감독자의 비굴한 모습에 보고 양들은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흩어진 양들은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고 만다. 감독자들이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 성도들의 경건을 무너뜨리고 신앙의 싹을 죽여 버렸다.

3) 예배는 성도들의 영혼에 산소와 같다
그 동안 예배의 소중함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마리아와 마르다의 비유다. 예수님을 만나자 사랑하는 예수님께 맛난 것을 대접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음식을 장만하는 마르다, 언니는 부엌에서 수고를 하는데 예수님 옆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 둘 다 귀한 모습이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마리아를 통해 예배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때로 봉사를 멈출 수도 있다. 전도도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멈출 수 없는 것이 예배다.
예배는 성도들의 영혼에 산소와 같다. 교회의 닫힌 문은 주님이 닫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닫은 것이다. 신앙인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 성경에서 비대면 예배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예배자의 자세를 찾아야 한다. 우는 사자의 울음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당황하지 말고 담대하고 차분하게 대처해가야 한다.

4.교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 미세먼지로 인해 수 년 동안 생활화된 마스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초기 외부유입 차단에 실패가 있었지만 이정도 수준에서 확진자 확산을 막아내고 있는 것은 ‘마스크 착용’ 때문이다. 마스크는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축복이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무너진 열방교회를 다시 세우고 꽃피울 그루터기의 사명을 한국교회에 주셨다는 증거다. 한국교회는 선제적으로 안전 수칙을 만들어 지키면서 공예배를 드려왔다. 미처 현장예배를 위한 대비를 하지 못했던 교회들도 속속 안전수칙을 만들어 시행하며 공예배를 회복하고 있다. 아쉽게도 확진자가 잠시 주춤한 사이 안전수칙을 잘 지키지 못한 소규모 모임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맞고 있다. 정상적인 생활이 회복될 때까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 것일까?

1) 가치는 책임을 요구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소위 “극한직업”이라는 tv 프로처럼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극한직업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성을 몰라서 하는 것일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극한 일을 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예배는 생명처럼 소중한 가치다. 예배를 지켜가려면 책임이 따른다. 예배는 참관이 아니고 참여하는 것이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참여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교회 소독과 안전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저질 정치인들의 횡포를 막아낼 수 있다. 예배 장소가 좁으면 안전거리를 지키기 위해, 한 번 드릴 예배를 인원을 나누어 두 번 드리면 된다. 예배를 드리고 싶지만 내게 열이 있거나 감기증상이 있으면 아쉬워도 집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만 있으면 많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예배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느냐에 달려있다.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다. 사태가 악화되어 관공서가 문을 닫고 대중교통 이용을 중단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예배를 지켜가야 한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반응을 보신다.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느냐를 세계관이라고 한다. 크리스천은 성경적 세계관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현상을 분별해야 한다. 제일 먼저 의식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시선이다. 주님도 우리들이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하는지 우리의 반응을 보신다. 달란트 비유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최선의 노력을 한 종과 두려움에 싸여 주신 달란트를 묻어 둔 종의 반응을 보시듯 매 순간 우리의 반응을 보시고 계신다. 달란트 받은 종이 최선을 다했는데 주신 달란트를 다 잃어버리거나 많은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벌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내가 세상 여론과 눈치를 보고 있는지,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 최선을 다했는지 보고 계신다. 지금은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신앙의 결기를 보여야 할 때다. 어려움 앞에 굴복하는 자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키는 용감한 자가 되어야 할 때다.

3) 주님은 우리에게 분별없는 광신과 맹신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외국의 한 사역자가 자신은 성경말씀을 믿기에 뱀에 물려도 안 죽는다며 뱀이 있는 공간에 들어갔다가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 분별없는 광신자의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별없는 광신과 맹신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중심을 보고 싶어 하신다. 주님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픽픽 쓰러져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현장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병이어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5천명을 먹일 음식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반응을 보고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보고 싶어 하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달란트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있으면 방법과 지혜를 주신다. 찾고 구하는 자에게 믿음과 지혜와 칭찬을 주신다. 위기에 처한 다윗이 군급하였지만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은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믿음의 용기와 지혜를 구해야 한다.

5.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경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인들이 우한 폐렴이 소멸되어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세계 각국의 크리스천들도 속히 공예배가 회복되어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가 언제 응답되는 것일까? 코로나만 없어지면 우리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코로나는 언제 끝날 것인가?

확실한 것은 경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과 경건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코로나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시험이 끊이지 않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예배에 대해 무지했던 죄와 바르지 못한 경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참된 예배자로 서기위해 신앙공동체가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할 때다. 우리의 경건이 회복되지 않으면 포스트 코로나는 오지 않는다.

2) 위기와 고난은 회복을 준비하고 계신 주님의 싸인
위기와 고난은 회복을 준비하고 계신 주님의 시그널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해서 믿음의 그릇을 잘 준비해야한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예배자로 서야한다. 육체에 산소가 없으면 육체가 죽듯이 영혼에 산소와 같은 공예배를 포기하게 되면 성도의 영혼이 질식해 버리고 만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생의 마지막 예배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신앙공동체가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예배를 통해 영혼이 회복되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1장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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