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NGSAN BIOETHICS RESEARCH INSTITUTE

생명윤리 소식

낙태 찬반 운동에서 프로라이프 관점에 대한 설명

작성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작성일
2019-05-01 12:07
조회
520





Reason to stand

 낙태 찬반 운동에서 프로라이프 관점에 대한 설명









근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지난 60년 이상 유지된 낙태죄 조항에 사실상 개정을 예고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위헌을 결정했다.  판단문 중 일부는 이렇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 고 헌재는 판단했다.  개인적으로 같은 주제를 다루는 미국의 케이스를 지켜봐오고 있었고 한국의 상황 또한 이해하고자 한국 여성정책 연구원의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최근 연구보소서들도 읽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은 못하겠지만 내가 얻은 통찰을 정리하여 젊은이들에게 나누는 용기를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이 주제에 관해 깊이 사유해보지 않았던 시절, 옹호도 반대도 강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럽거나 관점이 흐릿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명료함이 생겼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이 경험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세상에 이미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많고 낙태 찬반 운동에 관한 자료들도 많으므로 내 정리가 이 분야에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더하는 이로움은 없겠으나 다만 주변의 한 평범한 지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누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펜을 들게 되었다.

우선 낙태라는 주제만큼 예민한 주제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많은 이들이 이미 낙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이로인해 고통과 상실의 기억이 있으며 정서적으로 과거의 자신의 일에 대한  정당화가 동반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논리로 설득을 하고자 하여도 보이지 않는 벽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그리고 또한 반대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소위 악마로 묘사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다 진지하고 열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지한 열심 자체가 정당화의 기준이 되지 못함은 분명하다.  또한 낙태 찬반에 관한 입장은 종종 자신이 속한 진영의 입장 중심으로 나열되기 쉬운데 진영의 입장이 스스로의 독립적인 판단을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본다. 이것은 그보다 더 중대하고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은 언론 기사가 종종 잘못 대변하는 내러티브들에서 더 나아가 공부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 글로 인하여 어떤 이들이 가지고 있을 ‘낙태합법화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에 대한 고정관념’ (냉혈한, 종교적 논리강요, 개인 자유제한하는 도덕경찰 등) 을 버리게 도우면서 스스로의 입장에 대해 다시금 숙고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결국 핵심 질문은 뱃속의 태아가 사람인가 아닌가이다


태아가 사람(human being) 인가 아닌가. 이것이 결국 핵심 질문이다.  얼핏들으면 당연한 말 같으나 이 주제는 늘 이 핵심질문을 중심으로 궤도를 돈다.  왜냐하면 태아가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낙태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반대로 사람이 아니라면 남이 모체 속 ‘그것’을 키우던 없애든 남이 알 바가 아니고 상관할 수 있는 바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에서 입장을 정하려면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이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가 된다. 만일 ‘그것’이 사람이라면  이미 출생한 사람들처럼 형법이 보호하는 생명권의 보호 대상이며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해야하기 때문이다. 낙태의 경우를 두고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권리의 충돌이라고 프레임을 만들지만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효력이 있으려면 뱃속의 태아가 사람이 아니어야만 하는 사실은 모든 이들이 인정할 것이다. 만약 ‘낙태권’이 침해당해 자기 결정권이 침해받는다고 주장하려면 이 두 권리가 동등선 상에서 타협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하는데 만일 태아가 사람이라면 이 두 권리는 비교불가한 권리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내 삶을 불편하게 한다고 하여 그 목숨을 빼앗는 사회는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이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편의로운 삶을 살 권리 대하여 의심할 바 없이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낙태 찬성주도 진영 (프로초이스)은 태아가 ‘아직’ 사람이 아니고 ‘아직’ 인간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전부를 베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주장이 논리적, 과학, 그리고 윤리적으로 뒷받침 될 수 있는 근거들에 기반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입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임신기에 엄마의 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눈과 귀로 체감하며 확인할 수 없었고 모체 속 태아의 정보에 대한 무지가 만연했다. 이 무지가 낙태를 만연하게 하는데 공헌 했다면 근래 들어서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기술과 측정기술은 더 이상 이런 무지에 호소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있다. 모체의 태아가 사람이 아니며 여성의 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면 무제한적인 낙태에 대해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으며 여성의 순전한 자기 결정권이라고 인정하기 쉽다.  그러나 태아가 사람이면 이것은 두 명의 문제이지 한 명이 자기 혹을 제거하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게 되는것이다.

2. 과학적 측정 기술의 발달은 계속해서 ‘그것’이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엄마 뱃속에서 성장하는 그것은 마치 몸 안의 종양처럼 세포 덩어리(clump of cell)인가? 그렇다면 태아는 맹장 수술처럼 필요시 몸에서 제거할 수 있는 몸의 일부가 된다. 이 개념의 연장선 상에서 어떤 이는 자신의 뱃속의 아이를 “탄소(C) 유닛”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남기기도 했다 (모든 유기물은 탄소기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19세기말과 20세기초만 해도 과학계는 세포(cell)에 대한 지식이 미천했고 세포막 내부에 특별한 액체가 들어차있는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1953년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이중 나선 구조의 DNA는 ‘A,C,G,T’ 라는 디지털 코드를 알파벳으로 삼아 이루어진 생명체의 정밀한 설계도로서 향후 필요한 모든 몸체 계획 (body plan)과 발달에 대한 필요한 정보와 지시가 담겨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설계도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잉태되었을 때 완성되며 모든 태아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유전자 지도와 그에 따른 특별함과 개성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 이후에는 출생시까지 모태에서 양육을 통한 발달의 과정만이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태아가 단순 세포덩어리라는 주장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을 뿐더러 경험적인 지식—역사상 태어난 모든 사람이 거쳐간 발달 과정—과도 대치됨을 분명히 드러낸다.  유전학(genetics), 유전체학(genomics) 등은 생명의 디지털 설계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발생학(embryology)에서 새로운 연구결과들과 조산한 아이들을 살리는 기술을 연구하는 신생아학(neonatology)은 인류 역사상 없었던 놀라운 발견과 성과를 보이고 있고 직간접적으로 뱃속의 태아가 사람임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1,2].  제한없는 낙태합법화를 목표로하는 이들은 태아가 사람이 아니고 이른 발달 단계일수록 외과적 수술로 인한 제거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태아가 고통에 반응한다는 사실[3]과 낙태가 여성들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끼치는 해에 대한 종적 연구와 객관적 통계는 낙태가 윤리적으로 무결하며 여성에게 안전하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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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구 결과들에도 많은 이들은 그 시사점을 체감하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의 태아가 부정할 수 없이 사람임을 체감하는 때는 스피커로 태아의 심장박동을 듣거나 초음파 영상을 확인했을 때이다.  일반적으로 초음파 영상을 처음 촬영하러 가는 부모의 마음은 기대와 염려가 교차한다.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모든 증거 (메스꺼움, 구토, 생리중단, 체중증가, 피로감증가 등)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아직 아이와 ‘만났다’는 느낌은 약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초음파 사진을 통해 평온하게 손가락을 물고 있는 아이를 확인하는 순간의 체험은 그야 말로 첫 만남의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고 워낙 특별하기 때문에 많은 부부가 이를 기념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한편 초음파 촬영의 또다른 목적은 태아의 장애나 위험요소를 파악하는데 있기 때문에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고 있는지에 대한 염려도 함께 한다.  심장 박동을 증폭하여 듣는 기술와 초음파 영상 기술은 귀와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체감하는 이들에게 태아가 사람임을 증거하는데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낙태율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4]. 이런 이유로 여성의료기관을 빙자한 미국의 대표적 낙태시술기관 플랜드 페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에서는 초음파 의료서비스를 결코 제공하지 않는다.   이렇게 과학기술과 측정기술은 맨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없었던 정보과 경험을 제공함으로 모체의 태아가 세포에 불과하다는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제한적 낙태’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고 나아가 (최근 미국에서) 입법과정에 영향을 끼치는데 성공하고 있다. 데이타과학 시대의 걸맞는 표현을 써보자면 새로운 데이타들이 낙태를 제한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 모두 ‘그것이’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이 사람임을 안다. 낙태를 시술하는 이들도 안다고 인정한다[5]. 태어날 아기가 남아인가 여아인가 묻고 축하해줄 때 이미 우리는 뱃 속의 아이가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부모님이 태명을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러주는 것은 그것이 사람임을 알고 있다고 말해준다. 굳이 설명을 안해도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유산의 깊은 슬픔은 그것이 단순히 세포덩어리가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주변으로부터 임신 초기부터 아기 옷을 선물받기 시작하는 것은 그것이 사람임을 알려준다.  우연치 않게 홀로코스트의 비극의 장소 독일에서 인종 청소의 일환으로 유대인들을 제거할 때 사용한 바로 전략이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우선 세뇌하는 전략이었다.  사람이 아니라고 설득을 하지 않으면 맨정신의 사람은 그런 짓을 저지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속여야 했다. 아우슈비츠에서 멀쩡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6백만명을 학살에 동조하는 데 큰 몫을 한 요소는 유대인은 열등한 종자여서 제거해야 인류에 도움이 된다는 거짓말이었다.  불행히 이 시대에도 태아가 사람이 아니라고 부모들에게 거짓말을 함으로 무죄한 생명을 죽이며 평생 후회할 결정을 하도록 돕는 이들이 있다. 모태로부터 산소를 공급받기 때문에 아직 폐로 숨을 쉬지 않아서 신음소리 한 번 못내고 죽는 보호받지 못하는 가장 작은 약자들.  이것이 pro-life진영에서 낙태를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소리없는 학살이라고 이야기하는 타당한 이유다.

한국에서만 매년 30만명, 미국에서도 100만명의 아이가 뱃속에서 매년 소리없이 죽임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숫자가 너무 커서 체감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산부인과의사회 (회장 김동욱)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뤄지는 낙태 건수는 한 해 100만건 (하루 3000건)으로 정부 추정치의 3배,  1시간마다 125명의 여성이 아이를 지우고 있다는 실상이다[6]. 이 비공개 수치가 사실이라면 한국은 인구수 대비 낙태율은 그 높다는 미국의 6배를 넘나들게 되며 전세계에 큰 충격을 심어줄 것이다.

4. S.L.E.D. 테스트는 뱃속의 아기가 뱃속에서 나오기 전부터 사람이라는 논리적 결론을 피할 수 없게 한다

과학적 측정 기술의 발달과 직관의 강력한 증거 및 호소를 제외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뱃속의 아이는 그 안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미 사람임을 논거하는 S.L.E.D.라는 테스트가 있다.  S.L.E.D.는 Size, Level of Development, Environment, Degree of Dependency의 약자이다[7]. 크기, 발달정도, 거주 장소와 타인에의 의존도가 인간성을 박탈하는 이유로 작용할 수 없다는 강력한 논증이니 읽어보고 타당한지 검토해보고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 A. Size (크기/사이즈): 뱃속의 아기는 분명히 출생한 아이보다 크기가 작다. 그러나 작은 크기가 그 존재의 인간성을 박탈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만들지는 않는다. 4살 어린이는 14살 중학생보다 작지만 4살 아기가 더 작다는 이유로 그 생명을 죽일 수 없음은 당연한 상식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뱃속의 아기는 4살 아이보다 작을 뿐이다. 작다고 그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 닥터 수스의 명언을 첨가한다. “아무리 크기가 작을지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닥터수스” ( “A person is a person no matter how small. —Dr. Seuss.”)
  • B. Level of Development (발달정도):  뱃속의 태아는 출생한 사람보다 발달 정도가 뒤떨어져있다. 14세 중학생은 생리적으로 가임기에 들어갈 수 있고 4살은 그렇지 않지만 이런 발달 정도의 차이가 인간성의 유무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논리로 뱃속의 아이도 그 발달 정도의 차이 때문에 4세 아이와 동일하게 인간성을 인정해야한다.
  • C. Environment (거주 장소):  뱃속의 태아는 출생한 아이와 다른 환경에 있다.  그러나 거주 환경이 거주자의 인간성(personhood)을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물 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성이 덜하거나 더하지 않듯이 우리가 있는 장소는 우리의 근본적인 지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뱃속과 배밖은 거리적으로 불과 한뼘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 D. Degree of Dependency (의존도): 뱃속의 태아는 엄마로부터 제공받는 영양과 성장 환경에 의존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이유로 인간성이 박탈당할 수는 없다.  출생한 갓난 아기와 어린 아이들도 여전히 부모의 도움에 의존하여 산다.  이 때 부모가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죽일 권리가 있는가? 같은 이유로 나이든 노인, 식물인간, 산소 호흡기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 스스로 생존할 수 없어 타인, 혹은 장치에 의존하여 산다고 해서 그들을 독립적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하등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죽일 수 있는가?  늦게까지 부모님께 의지하며 사는 청년들의 처지는 원칙상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의존도는 사람으로서의 지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외우기 쉽도록 누군가가 S.L.E.D.라는 약자를 만들어 낸 재치에 힘입어 나는 예전에 한국어로 외우기 쉬운 줄임말을 개발한 바 있다. 이름하여 ‘장발의 의사’! 장소, 발달정도, 의존도, 사이즈의 준말이다 (장발을 휘날리며 차트를 들고 걸어들어오는 의사를 상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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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막 속에 가려진 논점 되찾기

영어표현에 연막을 친다( put up a smoke screen)는 표현이 있다.  집중해야할 중요한 것으로부터 주의를 돌려 혼란을 유도해 상대방을 속이는 전략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진영이 유독 집중해오는 강조점 몇 가지를 보면서 발견한 것은 객관적 통계자료와 일반적 연구결과들을 감추며 감정적인 연막전략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분별력을 가지고 보도자료들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연막을 친다와 유사한 개념으로 붉은 청어(Red Herring)있다. 사냥개들을 다른 곳으로 따돌릴 때 냄새가 고약한 붉은 청어를 매달아 유인한다는 유래가 있다고 한다.
냉혈한으로 묘사하기 
보통의 편견과 달리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미 여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낙태는 합법이며 이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엄마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놔두면 여성은 물론 아이도 함께 죽을 수 있는 경우 부모가 원할 경우 이뤄지는 이런 수술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거의 없으며 그러므로 이는 찬반 논점이 아니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모자보건법에 의해 오래전부터 보호되어왔던 당연한 권리이지만 때때로 반대입장을 냉혈한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이들의 네러티브에 의해 마치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 살리는 것을 막는 냉혈한적인 입장으로 완전히 잘못 포장되는 경우가 있다.
인구 수 감소를 막기 위해 국가가 낙태를 막는 배후라는 주장하기
국가의 인구수 감소를 위해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음모론적인 주장은 낙태합법화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논지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한 예로 무정부주의자이자 애국심 제로이면서 낙태합법화에 반대하는 것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과거에 개도국 시절 국가적으로 인구수를 줄이는 캠페인을 시행할 때는 잠잠하다가 인구수 절벽으로 국가의 미래가 염려가 되는 상황이 오니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주장은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국적과 무관한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쟁점이다. 생명은 국적을 불문하고 존엄하기 때문이다.
있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하며 극단적인 상황을 전형적 상황인 것처럼 제시하기
가장 주된 ‘연막’으로는 성범죄에 의한 원치않게 임신한 경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있다. 이런 경우가 가장 끔찍한 경우임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의심 여지 없이 이런 범법자를 형법이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는 임신중절의 예외적인 허용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우리나라의 모자보건법 또한 인정해왔다. 시대를 초월하여 이런 불행의 정도를 공감하고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극단적 경우의 끔찍함에 있지 않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통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전체의 1%를 넘지 않는데 이 비율을 ‘극단적으로’ 부풀려 마치 이 경우가 전형적인 낙태의 사유라는 잘못된 인상을 주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는데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태 불법화를 떠올린다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보도자료들에서 잘 알려주지 않는 통계는 이렇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낙태고려 사유 (99% [8], 한국여성정책 연구원 자료)는 성범죄에 의한 임신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사유들을 순서로 내열해보면 ‘경제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29%),  계속 학업이나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20.2%),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이미 낳은 아이로 충분해서’,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외에도 ‘술, 담배 및 약물 복용으로 아이 건강이 걱정되어서’, ‘자녀 출산과 육아로 힘들고 치져있어서, ‘파트너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내 체력이나 건강상태가 좋지않아서’ 등이었다. 유전학적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어서 (0.2%), 친척과의 관계 또는 성폭력으로 임신되어서 (0.7%),  ‘임신 지속이 나의 건강을 해칠 수 있어서(0.7%) 였다. 법이 혀용하는 낙태고려 사항은 2.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낙태의 무분별한 합법화를 원하는 이들의 내미는 단골 카드 또한 이와 같이 실제의 빈도를 감추며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예로 들면서 나머지 99%의 태아 살해를 정당화하게끔 감정적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상식이지만 극단적인 상황은 특별한 경우로 인정이 되어 부분적 용인을 하는 등의 토의는 언제든 바람직한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실제 통계를 밝히지 않은 채 최악의 극단적 상황과 전형적 상황을 바꿔치기 하는 속임수이다.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질문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면 된다. 그들이 앞서 연막을 사용하며 이야기한 ‘비극적이며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서 (경제적/사회적) 편의에 의한 낙태를 불법으로 제정하는데 찬성하겠냐고 물어보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결국 앞서 언급한 ‘연막’은 낙태합법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제한없는 낙태 허용’라는 도착지에 도달하기 위한 감정적 선동임이 이 순간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략에 대한 영어표현으로 ‘끔찍한 케이스에 어필하면서 자신이 참 입장을 위장하기’ (Disguise your true position by appealing to the hard cases) 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프로초이스 (낙태 합법화 찬성) 진영의 참 입장은 성범죄에 의한 끔찍한 케이스에 낙태 허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는 여성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9개월의 임신기를 걸쳐 자신이 원한다면 어느 때든 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막이 제거되고 난 후 드러나는 참 입장이다.  가장 끔직한 케이스를 내세워 제한없는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마치 아픈 아이를 병원에 빨리 데려다줘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교통법을 폐지하자고 하는 주장과 같은 종류의 터무니 없는 논리다.
‘22주’에 대한 진실
기존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조건 이외에 추가적인 낙태합법화를 추진하면 접하게 되는 첫번째 딜레마는 임신 몇 주 후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가 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여기서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자체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태아의 발달과정은 잉태부터 출생까지 불연속적이 아닌 연속적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갑자기 사람이 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견해를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1973년 미국 대법원의 그 유명한 ‘로우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에서는 임의적으로 태아가 스스로 모태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viability)이라는 비윤리적이며 객관화할 수 기간을 암묵적 기준으로 삼았는데 그 당시 의학 기술로 대체로 24주를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한계로 보았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은 주마다 주법을 달리하기 때문에 일률적이지 않지만 보통 예외상황을 제외하고는 임신 20-24주 이후 비로소 낙태를 불허하는 주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pro-life의 물결이 서서히 주도권을 찾아가고 있으며 주법 개정, 보수적 대법관 임명 등을 통해 1973년의 판결을 뒤집기 위한 포석을 놓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그 판결 당시 법정에서는 태아가 고통감각이 있는지, 움직이며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해서 현재보다 못한 의학 기술과 지식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이제 21주 혹은 그 이하에도 태아의 생존률이 높아져 가고 있는데 이는 애초에 ‘자체 생존능력’이라는 기준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임의적인 기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만일 의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며 6주 이후에 생존이 가능하게 되면 이 때를 기점으로 낙태법을 변경해야할 것인가? 앞서 소개한  S.L.E.D. 시험에 의해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인간성을 박탈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일 수 있으며 많은 이들이 태아가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런 비인간적이고 자체 모순적인 기준을 도입하여 법으로 적용시키려고 하는 것은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 언론에서 최근 이러한 외국의 경우를 참고 하여 22주를 기준점으로 타협점을 찾아볼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부디  유동적인 태아의 ‘자체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삼아 하루 수천 명의 무죄한 아이들이 자체 모순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법에 의해 죽임당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국은 전반적으로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법이 많은데 비해 유독 낙태법에 관해서는 유럽에 비해 대단히 진보적인 법을 가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유럽은 낙태를 행하기가 미국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1973년의 ‘로우 대 웨이드’의 논란이 많았던 낙태 허용 판결의 비극을 만회하기 위해 지난 46여년간 많은 노력이 있어왔고 일례로 지난 7년간 무려 18개의 주에서 태아의 초음파 심작 박동을 감지할 수 있는 시기 (~8주) 가 되면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법 (Fetal Heart-bear bill[9]) 을 통과시키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법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사이 미국은 낙태로 인해 하루에 3천명의 아이가 합법적일 뿐 아니라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낙태 기관에 의해 낙태를 당하는 시대의 비극을 통해 그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흐름을 수입하여 따라온 역사가 많았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할 망정 46년된 미국의 비극적 전철을 밟는 일이 있어서 되겠는가.  아래의 그래프는 22주 전후의 아기가 생존한 경우를 연도별로 추적한 표이다 (from Pew Research) . 1990년을 전후하여 조산안 아이를 살리는 신생아학 기술의 발달로 거의 전무하던 과거에서 폭발적으로 생존 케이스가 늘어난 통계를 보여준다. 이는 ‘22주’와 같은 임의적 기준은 과학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비객관적인 철학 의해 인위적으로 정해진 무리수임이 드러난다.

여기서 10주 이전 임신 기간에 따른 태아의 발달의 하이라이트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 태아는 22일 후에 스스로 피를 순환시킨다
  • 태아는 6주 후에 눈, 눈꺼풀, 코, 입, 혀 등이 형성됨이 ‘관찰’된다
  • 태아는 6-7주에 뇌신호가 감지된다. 8주면 몸의 모든 기관이 형성된다.
  • 태아는 10주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만 보아도 ‘생명’으로 간주될 순간이 언제 시작하는 아무도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느 순간까지 낙태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며 그 자체로 한 정치적 입장, 철학 내지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실은 언제 생명이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그 생명이 법적인 지위와 보호를 보장받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태생적 권리 (natural right) 와 법적 능동적 권리 (legal positive right)를 구분해야한다.  태생적 권리는 당신이 사람이기 때문에 얻는 권리이며 충분조건은 존재 그 자체이다.  정부는 태생적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법적 권리 (예) 선거권)는 내가 특정 나라 시민권을 소지할 뿐아니라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 하는 등의 부수적 조건들이 붙지만 이에 반해 선거권이 없다고 해서 태생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 권리가 태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 권리의 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외에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율이 낮아진다는 주장의 허구에 대한 진실은 지면과 시간 상 외부 소스를 링크함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link: https://lozierinstitute.org/how-the-legal-status-of-abortion-impacts-abortion-rates/

6.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주제

(우리나라에서) 최근 일부 젊은이들의 온라인 여론을 확인해보면 낙태죄는 여성을 처벌하여 남성의 책임을 회피시킨다든지 ‘헤어진 남자친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어떻게할 것인가’와 같이 여성이 공정하지 않은 책임을 진다는 불만을 다수였다. 한 기사 헤드라인이 적절히 이를 묘사했다 “임신하자 잠적한 남자 무죄, 혼자 낙태한 여자는 유죄.”  이에 따라 남녀 대결 구도로 쟁점이 이탈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인정하건데 미국과 같이 성관계로 생긴 아이에 대해 남성이 도망가더라도 끝까지 추적하여 평생을 통해 법적/금전적 양육 부담을 함께 지게하는 방향으로 법의 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는 수순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미비한 법은 최근 헌재의 판결로 인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에 대한 불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언급 조차 되지 않고 있는 코끼리만한 문제가 있다.  2017년의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혼인 상태별 낙태 건수 중 미혼이 전체의 46.9%를 차지했고 연령별로 보면 34세 이하가 전체의 무려 80.6%를 차지했다[10]. 이렇게 미혼의 젊은이들의 혼전 성관계에 의한 낙태가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참혹한 사회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혼전 성관계의 문제를 입에 뻥끗도 하지 않는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누가 감히 그런 꼰대 소리를!  그러나 기혼의 정상적 부부라면 남자가 잠적하여 생기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헤어진 남차진구가 잠적하여 문제가 생기고 남자측에서 낙태를 종용하는 것 모두 비극이지만 이 배경에 깔려있는 혼전 성관계의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다. 사실 정치적으로 불리한 (politically incorrect) 견해를 보이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않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현실인 세상에서 누군들 이 주제를 꺼낼 용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태아가 사람이며 낙태는 그 생명을 죽이는 시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혼전 성관계는 생명을 죽이게될 가능성을 열어두고도 책임지지 않는 쾌락이다. 이 현실을 직시했다면 정신을 차리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입장을 검토해야한다.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진실을 말하면서 비로소 모두가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는 교훈이 언제 시작될 수 있는 때가 올까. 이 주제가 사회적으로 논의하기에 적절한 주제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까.  미혼 여자들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단지 당신을 쾌락을 주체로 여기는 오빠들을 경계해야한다.  애초에 생명을 타협하고 싶게 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지혜다.

7.  법안 개정시 최소한으로 고려되어야할 몇 가지 

최근 헌법 재판소의 헌법불일치 (사실상 위헌) 판결은 내년까지 법안 개정을 요구했다.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개정될 구체적 법안이므로 헌재의 비극적 판결을 완화할 지혜로운 법안 개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타협점을 찾을 때 미국의 지난 50여년간의 pro-life진영의 노력을 점검해보아 참고하는 것은 간접 경험으로 삼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주제는 그 자체로 방대한 주제이므로 시간이 나고 수요(?)가 있으면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한국에서 법적으로 특별히 미비한 점이 많은 부분을 반영하는 질문들, “그럼 너가 키워줄래?”, “남자는 왜 같이 처벌 안받는데”, 등이 나타내는 현실적 어려움과 불만을 법적으로 보완하는 일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고 실제적으로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며 입양기관에 의한 대안에 대한 실제적 지원 등도 보완되어야할 것이다.

8. 좋은 자료 소개

큰 도움이 되는 소스 (주로 미국 측 자료) 들 몇 가지 소개해드립니다.
9. 마치는 말

이 글에서 인간의 존엄성 (sanctity of human being)에 대해서는 진영을 초월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논거를 꺼내지 않아도 됨을 보였다. 그 이후 낙태 찬성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뱃속의 태아가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게 하는 근거로 과학적 측정기술의 발달이 지목하는 방향과 논리, 직관을 들어 만인이 공감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태아에게도 적용해야함을 보였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 취하는 전형적 연막과 오류 몇가지를 지목했다.  인간이 무작위적이며 목표없는 진화과정의 부산물인  “탄소 유닛”에 불과하다면 이런 인간 존엄성 논의는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도, 인간의 내재적 권리에 대한 논의도 객관성이라는 권위를 결여하여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은 문화와 종교를 초월하여 배우지 않아도 내재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남녀노소, 인종과 발달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의 생명이 존엄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의 질문은 그러한 확신을 제공하는 세계관과 현실을 해석하는 세계관의 근본이 되는 존재를 가리킬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존엄성의 절대적 근거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내적으로 고귀하다는 것 밖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당신의 삶이 성취나 업적,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고귀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음을 받아들인다면 – 결코 스스로 호신할 수 없는 생명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뱃속에 있든 배밖에 있든간에.  우리나라는 사형 한 명을 집행 못하는 나라인데 그 배경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고 생명을 앗어갈 수 있느냐는 생명 존중 인식이 있다. 이 글의 용도는 어떤 입장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에 이미 탑재되어있는 생명 존중 인식이 태아에게도 연결되어야함을 보이는 것이다. 한 걸음씩 배려심과 함께 접촉점을 찾아 이야기를 열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Untitled collage.jpg사진: 나가노(長野)현립아동병원에서 지난해 10월 태어난 258g 세계서 가장 작은 아기 (좌), 3.37kg으로 지난 4월 20일 건강하게 퇴원했다 (우) [11].

참고문헌

[1] Science Is Giving the Pro-Life Movement a Boost.  https://www.theatlantic.com/politics/archive/2018/01/pro-life-pro-science/549308/
[2]  How anti-abortion activists use cutting edge science to justify ever stricter laws.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jul/13/how-anti-abortion-activists-use-cutting-edge-science-to-justify-ever-stricter-laws
[3] Dr. Colleen Malloy’s
[4] Bonding with Baby: Why Ultrasound is Turning Women Against Abortion https://www.catholiceducation.org/en/controversy/abortion/bonding-with-baby-why-ultrasound-is-turning-women-against-abortion.html
[5] 낙태 시술 전문의 (Dr. Anthony Levatino) 의 법정 증언  )]
[6]  김동욱 산부인과 의사회 회장 인터뷰. http://news1.kr/articles/?3410725
[7] S.L.E.D. test https://www.str.org/articles/the-s.l.e.d.-test#.XLLSIOtKhTY
[8]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김동식,김영택,이수연. 2014 한국여성 정책 연구원 보고서.
[9] https://en.wikipedia.org/wiki/Fetal_heartbeat_bill
[10] 2017년 통계자료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2/91486/
[11] 가장 작게 태어난 아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445951 


4월 25, 2019Posted in낙태 찬반 운동태그:abortionbest pro-life arguments낙태낙태반대낙태찬반운동태아임신중절제한적 낙태prolife

게시자: 손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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